<주황 요> 2026 / 사진.신솔아

<주황 요> 2026 / 사진.신솔아

의문의 시작점은 퍼포먼스의 본질에 대해서였다.

몸을 움직이고, 몸이 숨쉬고 기록되는 순간의 형태는 영상이나 사진으로 기록될 수 있으나, 그 정수는 시각매체를 통해서 충분히 기억될 수 있는 것일까?

퍼포먼스의 중요한 지점이 관객에게 지금 이 시간, 이 장소, 이 사람들과 - 이 특정한 정치적 맥락 속에서 - 펼쳐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에 있다면, 사실 보이는 것만을 남기는 것에 얼마나 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인가? 영상 없이, 사진 없이 우리는 퍼포먼스를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논문을 인용할 때 전체가 아닌 일부 단락만 잘라 인용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식으로서 유통되는 것과 같이, 모든것이 포함되지 않고 잘려진 일부라 해도 그것이 충분한 정수를 담고 있고 맥락 안에서 유통되는 한 그것은 충분히 원본의 복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퍼포먼스 또한 가장 중요한 그것이 살아만 있다면, 꼭. 꼭 보이고 들려야 하는 것일까?

0. 영인분

<영인분>2026

<영인분>2026

2024년 처음 선보였던 퍼포먼스 <일인분>은 장례식에서 펼쳐진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이 전후 맥락을 이해한 후, 일시적인 연대를 꾸리고 또 휘발하는 감각에 대해 말했다. <영인분>은 이 맥락을 완전히 소거한 채, 당근마켓에서 구한 알바생들에게 어떠한 맥락도 말해주지 않고 오로지 행동만 알려줬을 때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를 실험한 영상이다.

4시간 동안 ‘아름다운’ 퍼포먼스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나는 60미터를 넘는 천을 목으로 찢어 나갔고, 눈을 가린채 자갈밭과 단차가 있는 공간에서 맨발로 넘어지고 부딪혔다. 노래도 부르지 않았고, 공간은 오로지 “컷” “다들 빨리 움직이세요!” 와 같은 지극히 사무적인 말로 가득했다. 나 또한 습관처럼 모든 컷이 끝난 후 퍼포먼스의 여운을 즐기기도 전에 촬영본을 확인하고, 웃으며 촬영 크루와 담소를 나누고는 했다. 그런데 왜일까. 나도, 크루도, 참여한 알바생들도 점점 웃음기가 사라져갔다. 누군가는 울었다. 누군가는 인상을 찌푸리고 나에게 괜찮냐고 끊임없이 물어왔다. 그들의 호흡이 맞아 떨어지며 나의 목을 당기는 천을 잡는 양쪽의 힘은 점점 팽팽해졌다. 그들을 묶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장례식의 퍼포먼스 참여자들과 같은 경험을 했던 것인가? 나는 그때와 같은 경험을 했는가? 분명한 것은 많은 의미가 탈각된 이 장소에서도 어떤것은 작용했고, 그것은 사람들을 묶었고, 같은것을 감각하게 했고, 감동하게 했다는 것이다.

<aside> 👀

영인분 이후 몸의 역학을 실험해보기로 했다.

1)일시적으로 타인과 만날 때

2)지속적으로 타인과 접할 때

3)자기 자신과 접할 때

각각 퍼포먼스의 리뷰는 사진과 영상이 아닌 다른 무언가.

조건은 없음, 피드백 없음, 리뷰어의 마음대로 창작하고 나에게 통보하면 된다.

*퍼포먼스에 대한 사진과 설명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부디 리뷰만을 보고 퍼포먼스를 감각할 수 있기를.

</aside>

1. 정제수, 전란액, 유크림

<정제수, 전란액, 유크림> 2026 / 사진. 허세빈

<정제수, 전란액, 유크림> 2026 / 사진. 허세빈

퍼포먼스 <주황> 3부작은 두명의 배우와 함께 시작했다. <정제수, 전란액, 유크림>에서 우리는 3개월 동안 지독하게 만나면서 수없이 많은 즉흥을 통해 서로의 몸을 만지고, 알 수 없는 환경으로 서로를 던졌다. 그리고 각자의 삶의 0살부터 지금의 나이까지, 매년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적은 텍스트를 공유하고, 그 텍스트 이면의 삶을 공유하며 퍼포머 바깥의 서로와 친해졌다.

4시간 반, 총 5회차의 연속 즉흥극을 준비하며 내가 보고자 했던 것은 극을 꺠고 나오는 퍼포머의 모습이었다. 우리의 신체가 타인과 즉흥적으로 맞닿을 때, 주어진 환경속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때, 그 연기를 깨고 ‘나’는 언제 비집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그 순간을 배우들은, 관객은, 어떻게 느끼고 기억할 것인가?

REVIEWER - 서묘연 (소설/시)

서묘연 작가님의 이메일.

서묘연 작가님의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