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레기봉투/정승우

<구토> 2026

<구토> 2026

노력은 일종의 잔혹이며, 노력을 통한 존재 또한 잔혹입니다. 휴식을 끝내고 존재로 확장된 브라마는 아마도 즐거운 화음이 만들어 내는 고통 때문에 괴로워했을 겁니다. - 앙토냉 아르토

확고한 두개의 성이라는 환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미셸 푸코는 의사들과 사법기관에 의해 하나의 성을 선택할 수 밖에 없어 결국 자살을 택한 「알렉시나 B 로 불린 에르퀼린 바르뱅」이라는 한 양성구유자의 회고록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성이라는 것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할까? 서구 근현대 사회는 집착에 가까운 집요함으로, 그렇다고 답해왔다.” “18세기부터 성현상에 관한 생물학적 이론들, 개인의 사법적 조건, 그리고 근대국가의 행정적 통제 형식들은 하나의 신체 안에 뒤섞여있는 두 개의 성이라는 관념을 점차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치 않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제약하게 되었다. 이제 각자 하나씩은 성을 가져야 하고, 오직 하나의 성만을 가져야 한다. 이제 각자가 갖게 되는 성정체성이라는 것은 일차적인 것, 심층적인 것, 결정되어버린 것 (그러므로 바꿀 수 없는 것), 그리고 결정하는 것이다. 다른 쪽 성의 구성요소들이 어쩌다 나타난다 해도 그것은 우연하고 피상적인 것, 심지어는 그저 기만에 불과한 것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처럼 오래된 성별 이분법적 이야기는 생물학적으로 태어난 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며 그이외는 정신병자라는 현재의 트랜스배제적 담론의 인식틀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우리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성생활의 담론적 장은 그 안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끊임없이 구별하는 동시에 격발 되는 섹슈얼리티에 관한 이야기를 고통스럽게 고백할 것을 요구하는 해독의 장인 것이다. 이시마의 전체적인 작품은 바이섹슈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퀴어로서의 정체성이 가지는 이러한 증명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논의될 수 없다.

이러한 권력의 행사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개인의 정체성의 핵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누구와 닮았고 닮아가는 것일까? 멜라니 클라인의 고전적인 정신분석적 대상관계이론의 설명으로는 우리의 자아는 대상, 특히 초기 대상에 대한 관계와 내사 그리고 동일시로부터 형성되어 그 심리적 현실, 모체(Matrix)를 통해 계속해서 세계와 관계해 나간다. 하나의 자리(position)를 선점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이론에서 정체성의 형성 과정 중 가장 특징적인 기제는 투사적 동일시인데, 간단히 그 기제를 정리하자면 “자기 또는 내적 대상의 측면들이 분열되어 외적 대상에 귀속되는 무의식적 환상”이다. 다시 말해서 나의 불안이나 죽음충동 등이 외부의 타인에게 투사되고 그것이 다시 돌아오는 현상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심리 내적 과정이 없다면 타인을 이해할 수도 공감적으로 소통할 수도 없다.

사실 클라인의 업적은 그녀보다 앞선 정신분석학자들의 영향 아래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앞서서 있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기제에 대한 논의를 빠뜨릴 수 없겠다. 이러한 동일시와 관련된 이해는 처음에는 히스테리에서 그다음에는 우울증 및 다양한 정신병리에 대한 칼 아브라함과 지그문트 프로이트, 산도르 페렌치의 기념비적인 고전 정신분석적 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영인분> 2026

<영인분> 2026

시기순으로는 페렌치가 1909년 처음으로 내사라는 단어를 창안해 냈다. 그는 “외부 세계를 자아 속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무의식적 환상’의 대상으로 만드는 (구순적) 과정을 기술하기 위해” 이러한 단어를 사용했다. “페렌치는 불쾌한 충동 자극들을 자아로부터 축출하기 위해 투사를 사용하는 망상증환자와 외부 세계의 상당한 부분을 자아 속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무의식적 환상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내사를 사용하는 신경증 환자를 대비한다. 페렌치는 한편으로는 구순적 충동 자극과 내사간의, 다른 한편으로는 항문적 충동 자극과 투사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지적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였다. 칼 아브라함은 후에 조울적 환자와의 작업을 위해 이러한 상관관계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였다.” 이러한 관점은 후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의 공동 작업에서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가령 프로이트의 「슬픔(애도)와 우울증」이라는 논문에서는 애도 과정에서 일어나는 가학적인 초자아로서 애도 대상이 내면으로 옮겨져서 자기 인격의 한 부분이 되는 우울증의 현상을 기술하기 위해 내사 개념과 동일시 개념을 사용한다. “즉 리비도가 철수될 뿐만 아니라 대상 그 자체가 내면으로 옮겨진다. 이때 개인의 정체성은 혼란을 겪게 되는데, 이것은 그 과정에서 그의 정체성이 사랑했던(그리고 증오했던) 대상의 성격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 과정을 ‘동일시’라고 불렀다.” 이후에 「집단 심리학과 자아분석」에서 프로이트는 동일시 개념을 더 발전시킨다. 정신분석학에서 고전적인 동일시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일시는 대상(타인)과의 감정적 결합의 근원적 형식이다. 둘째, 동일시는 퇴행적인 방법으로, 즉 대상을 자아 속에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리비도적 대상 결합의 대용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기상 다른 텍스트의 계열에서 반복되는 생각은 동일시는 식인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다른 곳에서도 우리는 이미 동일시가 대상 선택의 예비단계, 즉 자아가 대상을 선택하는 최초의 방식-양가 감정의 방식으로 표출되는 선택의 방식-임을 보여주었다. 자아는 이렇게 선택한 대상을 그 자체에 통합시키길 원하고, 이런 과정이 일어나는 리비도 발달 단계의 구순기에는 그 대상을 집어삼킴으로써 그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동일시는 리비도가 조직화하는 첫 단계인 <구순기>의 파생물처럼 작용한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가 갈망하고 존중하는 대상을 먹음으로써 우리 것으로 만들고, 이런 식으로 그 대상을 소멸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식인종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식인종은 적에게 탐욕스러운 호감을 느끼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먹어치운다.”

이런 생각은 내사의 개념에서 온 것으로서, “사랑하거나 증오하는 대상들을 입을 통해 그리고 먹는 활동을 통해 안으로 들여오며, 이것은 내사 기제의 근저에 있는 것에 대한 신체적 또는 환상적 표현”인 것이다.

아무튼 간에 고전 정신분석적 연구에서 나타나는 것은 구순기와 항문기의 퇴행적인 원시적인 기제가 바로 타인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내는 자아의 동일시, 내사 메커니즘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먹어 치우고 잡아먹히지 않으면(누군가의 개성과 스타일을 ‘잡아먹었다’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개인의 정체성의 핵이라는 것을 유지하기에 어려울 것이다. 도날드 위니코트가 「정상적 정서 발달에서 우울적 자리」라는 논문에서 보어필리아적(Vorephilia)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먹히는 것은 유아의 돌봄의 가장 초기 단계에서 어머니의 소망이고 실제적인 필요이다.”

이러한 생애 초기부터 시작하는 신체를 먹어 치움, 빨기 등의 구강기적 설명은 정체성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을 가능케 해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클라인은 양성 모두가 ‘여성적 위치’를 처음으로 겪는다고 설명했다.

정체성에 대한 고전적인 정신분석학적 논의는 우리가 어떻게 사회적 젠더를 수행하는가에 대한 약간의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우리는 누군가를 환상적으로 먹어치우고, 잡아먹히고, 심지어는 빨면서 여성적 태도로부터 출발해 서로 간의 경계를 허물면서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에도 어떤 퀴어적 정체성은 누군가의 체내로 쉽사리 동화되기 어렵고, 설명되지 않고, 발달 노선에서 탈락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증명할 것을-앞에서 푸코를 언급하며 이야기했던 것처럼-끝없이 요구당하고, 탈진 당해서 자살로서 자기 자신임을 증명할 수밖에 없을 때까지 사회나 집단은 한 가지의 ‘정상적인’ 정체성으로서의 고백을 수행 할 것을 밀어붙인다.

<구토>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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